일괄공제 5억원(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1조 제1항)과 금융재산 상속공제(제22조 제1항)는 조문이 “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로 적용을 한정합니다. 기초공제 2억원(제18조)만 “거주자나 비거주자의 사망”에 모두 적용됩니다.
“상속은 5억까지 세금이 없다”는 말의 조건
상속을 앞두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이해가 “5억까지는 상속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근거는 일괄공제입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1조 제1항은 상속인이나 수유자가 기초공제와 그 밖의 인적공제 합계액과 5억원 중 큰 금액으로 공제받을 수 있다고 정합니다. 그런데 이 조문의 첫 구절은 “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에”입니다. 적용 대상이 거주자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금융재산 상속공제도 같습니다. 제22조 제1항은 “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로서” 순금융재산의 가액이 있으면 최대 2억원을 공제한다고 정합니다. 그 밖의 인적공제를 정한 제20조 제1항 역시 “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로서”로 시작합니다. 반면 기초공제를 정한 제18조는 문장이 다릅니다. “거주자나 비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에는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2억원을 공제한다.”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나란히 적고 있습니다. 조문을 이렇게 나란히 놓고 보면 결론이 분명해집니다. 피상속인이 비거주자인 상속에서는 실질적으로 기초공제 2억원만 남습니다.
그 차이가 세액에서 얼마나 벌어지나
공제 5억이 빠지는 것이 왜 큰 문제인지는 세율 구조를 보면 드러납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6조는 과세표준 1억원 이하 10%, 1억원 초과 5억원 이하 20%,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30%,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의 누진세율을 정하고 있습니다. 공제가 줄어들면 과세표준이 커지고, 과세표준이 커지면 더 높은 구간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즉 공제 차액이 그대로 세액 차액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간이 올라가면서 차이가 증폭됩니다. 다만 방향이 반대로 작용하는 요소도 있습니다. 제3조는 피상속인이 거주자인 경우 모든 상속재산에, 비거주자인 경우 국내에 있는 모든 상속재산에 상속세를 부과한다고 정합니다. 비거주자는 과세 범위가 국내 재산으로 좁아집니다. 해외 재산이 많고 국내 재산이 적은 분이라면 과세 범위 축소 효과가 공제 축소 효과보다 클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재산 구성에 따라 갈리고, 계산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거주자 판정은 국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판단의 앞에 거주자 판정이 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거주자 개념을 소득세법에서 가져오고, 소득세법 제1조의2 제1항은 거주자를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의 거소를 둔 개인으로, 비거주자를 거주자가 아닌 개인으로 정의합니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재외국민도 생활의 근거가 해외에 있으면 비거주자일 수 있고, 외국 국적자도 국내에 주소가 있으면 거주자일 수 있습니다. 주소는 체류일수와 별개로 생활의 근거가 어디인지로 판단되므로, 183일이라는 숫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는 출입국사실증명, 거주국 납세증명서, 가족의 거주지, 주택 보유·임차 상황, 직업과 주된 자산의 소재를 함께 놓고 판단합니다. 판정이 애매한 사안이라면 거주자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정리해 두는 작업 자체가 실익이 큽니다. 공제 5억의 적용 여부가 여기서 갈리기 때문입니다.
기한은 6개월이 아니라 9개월일 수 있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67조 제1항은 상속개시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신고하도록 정하고, 제4항은 피상속인이나 상속인이 외국에 주소를 둔 경우에는 그 기간을 9개월로 한다고 정합니다. 국제 상속에서 이 3개월의 차이는 대단히 실용적입니다. 상속인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으면 위임장과 서명 인증을 각 거주국에서 받아야 하고, 공증이나 재외공관 인증에 걸리는 시간이 국가마다 다릅니다. 여기에 거주국의 상속 절차가 따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9개월을 전제로 역산해도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 증여세는 여유가 없습니다. 제68조 제1항은 증여받은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3개월 이내에 신고하도록 정합니다. 해외 거주자가 관련된 증여에서는 서류 준비가 기한을 그대로 잡아먹기 때문에, 증여 실행 전에 서류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상속은 발생한 뒤에 설계할 수 없습니다
결과를 가르는 변수 대부분은 상속개시 전에 정해집니다. 피상속인의 거주자 여부, 재산의 소재지, 재산의 구성 — 이 세 가지가 공제와 과세 범위를 동시에 결정합니다. 상속이 개시된 뒤에는 이 중 어느 것도 바꿀 수 없고, 남는 일은 정확히 평가하고 기한 안에 신고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해외에 거주하면서 한국에 재산을 두고 계신 분이라면, 상속을 걱정하는 단계에서 한 번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어떤 재산을 어느 쪽에 두는지가 나중에 적용될 공제를 바꿉니다.